– 2018.12.03 기록 – 공짜로 있는 갑자기 튀어나와 봐왔던 영화가 갑자기 파고든다.영주야 안아주고 싶어.
불행하게 내던지에는 어려서 약한 나이라고 해서 불행하게 던지는데 마땅한 나이가 있을까만…갑자기 양친을 여의다 동생을 지키는 가장이 된다는 것은 그래도 14살 소녀에게는 특히 적당하지 않은 가혹한 불행이다.불행의 원인인 가해자가 불행한 현실을 치유하는 구원자가 된다는 것은 슬픈 이율배반이다.가해자를 용서하기 전에 가해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잔혹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은 “(영주의 동생처럼)불행의 파편에 맞아는 있지만 그 짐을 짊어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영주의 오열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감싸주고 싶어, 영주. 가끔 불행이 오겠지만 너무 갑자기 내던지는 듯한 불행하지 않으면 좋다.세상의 모든”영주”을 누가 잡아 주는 것인가···.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용하지만 들리는 영화, 영주.영화를 보면서···. 사람을 본다. 그리고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