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사람이 쓴 좋은 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이 책이 처음 신간에 나왔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도 신청해놨는데 계속 볼까 말까 해서 미뤄왔다.뭐랄까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데 대충 훑어봤을 때 에세이 같은데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에세이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아 망설였다.또 천문학자는 아니지만 천문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저자가 말하는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문장이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알게 됐기 때문에 사실상 이 책의 첫인상은 새로움보다는 익숙함 공감을 느끼고 싶을 때 읽는 책. 였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찾은 스마트도서관에 이 책이 대출 가능 책으로 돼 있어 “잡았다!”면서 무작정 대여했다. 그래, 이제 한 번 읽어보자! 하면서 빌려 읽고 방학으로 맞이한 첫 월요일 아침. 가볍게 무슨 책부터 시작할까? 하면서 이 책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만족.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이 책을 필두로 독서 리뷰 영상을 새로 준비해 볼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할 말이 많았고 추천하고 싶었다.

1장에서는 행성 과학자로서의 저자의 대학원 라이프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어떻게 행성 과학자가 돼 타이탄 1호 박사가 됐는지, 시간강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기까지의 과정 등이 나온다. 내가 이 챕터에서 무엇보다 열광했던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대학원에 대한 환상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정말 농담이 아니라 대학원에 가서 연구하고 싶어서 자대 대학원까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서 나왔어.오랜만에 뵙는 교수님들 사진도 보고..)

나는 지구과학교육이지만 천문학도 좋아하고 대기과학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연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다. 특히 연구하는 이공계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멋있고 존경스러울 수 있을까. 제가 학부 시절에 대학원 연구실 인턴으로 활동하면서 석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언니들의 어깨 너머로 본 연구 방식, 고등학교 때 전람회를 위해 연구 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 인턴 활동 중 만났던 극지연구소의 여러 연구원 분들을 떠올리며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파트였다.

흠, 뭐랄까 아무튼 나도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천문학자들의 연구활동을 보고 ‘그걸 연구해서 뭐하니?’ ‘뭐해 먹고 있어?’라는 질문보다는 그런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을 존경하거나 멋있는 것 같다. 저자도 이런 사람들을 무해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저자가 시간강사로 활동하면서 ‘우주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한 경험담도 정말 유익했다. 이공계인이 아닌 예체능계, 인문계 수강생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 나에게도 매우 의문이었다. 그리고 저자만의 과제를 주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진정한 교육자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래 문장은 뼈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유익하고 충격적인 글이었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빠지지 않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차지 못하는 내가 뭐가 다른지…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기본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는 오만함에 제동을 거는 아주 좋은 글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도 축구공 하나 제대로 못 차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체육시간에 체육을 안한 것도 아니잖아?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결혼하고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실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더욱 이 책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여성 천문학자의 에세이, 그것도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함께 연구 활동을 병행해 자신만의 우주를 확장시켜 나가는 천문학자는. 그녀의 행보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여성보존과학자의 이야기부터 여성천문학자들까지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자기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멋진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심채경 박사의 첫 연구는 우연히 만난 타이탄 대기 스펙트럼 자료에서 시작됐다. 나는 이분이 수많은 천문학 연구 중에서 대기 스펙트럼 분석으로 시작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내가 고등학교 때 했던 연구도 대기 스펙트럼 분석이었고 – 지금도 그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님의 에세이 중 연구방식(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 등)에 대해 가끔 언급될 때마다 대충 머릿속에 그려져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 말도 인상 깊었다, 우주의 범위는 너무 넓어서 사실 어느 하나만 따서 연구하면 그게 첫 연구가 된다고.

그리고 그녀는 타이탄 1호 박사에서 달 연구로 전향하게 되었다. 달의 토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로 태양풍을 말할 수 있다. 즉 태양을 더 많이 접촉하고 있는 지역의 토양이 훨씬 노후화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기장의 영향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물증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달의 크레이터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분석하는 과정을 보면서 ‘와, 역시 이래야 연구논문을 쓰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결과론적으로 보면 연구 주제가 눈앞에 와준 느낌? 아무튼 이 연구를 통해 몇 년 뒤 심채경 박사는 <네이처>로부터 인터뷰 제안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인터뷰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그는 연신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했다. 어쨌든 달 탐사가 제대로 시작도 안 한 나라에서 젊은 과학자로 뽑혀 인터뷰를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닙니까! 원래 자리도 만들어주면 더 잘할 수 있는 거. 조금 더 기세를 타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사

우연히 천문학과 도킹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말 좋아서 저장.생각해보면 내 인생도 우연히 찾아온 운명적인 랑데부들의 집합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지금의 직업과 환경에 도킹한 게 아닌가 – 마지막 문장도 멋지다.별에서 태어나 우주의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것은 바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브였기 때문이다.

지금 막 찍은 노을(2021년 7월 19일)이 페이지를 읽으면서 요즘 이 책을 읽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하늘이 정말 장난 아니다. 소나기가 계속 내리긴 했지만 엄청난 뭉게구름과 맑은 하늘, 저녁이 되면 붉게 혹은 분홍색으로 물드는 하늘. 바라보고 있으면 오직 감탄만이 나오는 하늘의 연속이다. 그런데 책에서 휙 이런 글이 나오면 이것도 우연보다는 운명이라고 생각된다. 또 이제 진짜 장마도 끝이래. 진짜 이맘때 얘기구나.

실제 위 두 페이지가 레전드 오브 레전드다. 처음 1장에서 대학원 파트를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부러워한 나머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건 꼭 서평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점점 뒷내용이 될수록(특히 천문학 내용이 나올수록)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의지가 약해지면서 쓸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자마자 이건 꼭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통째로 찍어놨어.”도대체 어떤 책을 쓴다는 거야?” 원고를 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책장에 꽂힌 김준혁 작가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뭐든 좋겠지’ 뭐든 되려면 뭐든지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든 하면 뭐든 좋다고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그래서 안개 속의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었다.솔직히 이 책의 전체 주제?를 말하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쉽게 모르겠다. 천문학자의 천문학 연구 이야기도 숟가락 한 숟가락, 천문학 역사 이야기도 숟가락 한 숟가락, 한 대학원생의 회고록 스푼 한 숟가락,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가정을 위한 그녀의 정성스러운 숟가락 한 숟가락,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들의 열정 스푼 등.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심채경의 솔직함으로 무장돼 그녀의 에세이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집어서, 그래서 무슨 책이야?라고 하자 어느 천문학자의 에세이라고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쉬울 정도다. 에세이는 맞지 근데 그냥 방구석 일기잖아. 심채경 박사의 글 덕분에 행성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대학원생의 일생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며 천문학 지식도 몰랐던 사람들이 천문학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되며 여성 과학자라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순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소리내어 이런 책을 세상에 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덕분에 또 하나의 별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 거니까.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아, 읽을 때도 소름이 돋았는데, 또 타이핑을 할 때도 소름이 돋는 문장이다. 마치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오마주한 듯한 문장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의 ‘고요함의 바다’에 첫발을 내딛으며 한 말이 책의 에필로그까지 작성하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면서 정말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점(.)이겠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도약점이라는 표현이….점을 찍는 그 순간의 작가를 생각했지만 괜히 내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박사에게 열린 또 하나의 우주는 어떤 우주인지도 묻고 싶다.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가고 싶은 것 투성이다.

이책을표현하는글을쓰면이런책을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자신에게도 이런 책을 읽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 겨울 서점에서도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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