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식 로컬스토리 에디터
■충주시 말단 직원, 중앙부처에서 강의함. (2016년 12월)
문체부에서 연락이 왔다. 문체부에서는 40여 개 중앙부처 온라인 홍보담당자들을 매달 모아 워크숍을 갖는다고 한다. 워크숍에서는 담당자끼리 우수사례 발표도 하고 유명 웹툰 작가나 마케터 같은 사람을 불러 강의를 듣고 정부 부처의 홍보 간 협력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들으면서 속으로 ‘멋있다!’ 지방자치단체도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나도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올해?) 지방도시 말단 공무원을 불러줘서 고맙고 들떠 있어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말을 끝까지 듣자 반전이 있었다. 와서 강의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라는 것이다. 그 워크숍에서 자주 워크숍 연사를 뽑기 위해 선호도 조사를 하는데, 거기서 가장 만나고 싶은 연사 중 1순위로 내가 뽑혔다고 한다.
그때 충주시 SNS를 총괄하고 있었다. 총괄이라는 말이 참 멋지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총괄이라고 하니까 능력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총괄이라는 담당자가 한 명이라는 뜻이다. 충주시에서는 그동안 SNS를 여러 명에게 나눠 맡았다. SNS라는 것이 안 한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업무보다 우선순위가 뒤처졌지만 보다 공격적인 홍보를 하고 싶었던 조길형 충주시장은 SNS를 한 사람이 전업 관리하도록 했다. 충주시 SNS 첫 총괄이 되었다.
당시 SNS 중 압도적인 1위는 페이스북이었다. 그래서 많은 공공기관이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이상한 계정이 하나 나타났다. 충주시 페이스북에 공공기관이 한 게 맞나?라는 조악한 홍보 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포스터는 채팅방을 패러디한 인터넷 드립투성이였지만 심지어 색 배합을 무시한 듯한 원색 기본 도형으로 그려져 실로 파격적이었다.이런 충주시 페이스북 포스터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독버섯처럼 퍼졌다. 처음 충주시 페이스북 포스터를 접한 사람 중 몇몇은 해당 홍보물이 공식일 리 없다고 부인했고, 몇몇은 공공기관이 장난친다고 분노했고, 몇몇은 확실히 관심을 끄는 홍보 방식이라고 납득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런 과정은 마치 인간이 죽음을 맞는 5단계와 비슷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런 콘텐츠를 충주시 B급 홍보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본이야기로 돌아가 문체부와 친구들은 왜 나를 보고 싶었을까? 이런 충주시 포스터를 그린 담당자가 제정신인지, 제정신이었다면 어떤 생각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이 강연이 중앙 부처에 충주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충주시 사과즙을 가져와 교육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사과즙을 한 포씩 나눠주었다.(사과는 충주시의 대표 특산물이다.) 강연을 비롯한 강연자들에겐 사과즙을 상품으로 돌렸다. 강연 주제가 충주시 홍보였기에 자연스럽게 강연은 충주시 관광지, 특산물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2시간에 걸친 강의 동안 충주라는 단어는 300번 정도 등장했다. 이쯤 되면 강의를 들은 중앙부처 직원들의 뇌리에는 충주시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의 첫 강의였다.
■ 타마유라 홍보 담당자 (2016년 7월)
다음 연초에 계획을 하나씩 세우지 않았나? 2015년 말쯤 나도 내년에 뭘 할까 고민 중이야. 그때 내 눈에 SNS가 들어왔다. 검색 포털 메인에는 페이스북 주가가 얼마나 올랐고 인스타그램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기사가 매일 올랐다. 한국 컴퓨터의 첫 화면을 맡은 포털을 검색하자 나오는 글은 육아 독서 운동 등 블로그가 하나같이 알차다. 이쯤 되자 SNS는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배워야 할 필수 교양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새해에는(2016년) 나도 SNS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SNS를 처음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만든 SNS는 황량하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고 텅 빈 화면을 보니 첫 문장 쓰기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아 부담스럽고 아까웠다.(실제로는 한 명도 읽지 않을 텐데) 연습을 좀 하고 싶었다. 마침 충주시 홍보실에서 시청 직원을 대상으로 블로그 기자를 모집하고 있어 응모했다. 연습하기 위해 시작했기 때문에 매주 한 편씩 포스팅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펴본 블로그처럼 잘방과 무즘채를 쓰며 글을 썼다. 2016년 4월 첫 글을 등록한 지 3개월 만인 2016년 7월, 나는 충주시 홍보담당자가 됐다.
사실 홍보담당자가 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업무를 맡은 지 꼭 1년이 되는 시점이라 일을 하려 했다. 게다가 상반기에 열심히 해놔서 하반기 성과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갑자기 업무가 바뀌어 분했다. 게다가 나는 sns도 하지 않고 TV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sns 공식 계정을 맡는 것이 매우 부담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위에서부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열심히 해.스스로 열심히 SNS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거 아니야?
■왜 B급 홍보?
설마 우리 과장님은 내가 SNS를 실패했다고 해서 나에게 핀잔을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일 무슨 말을 들으면 그때는 “나한테 잘하라고…”(투자는 원래 본인 책임…)라고 말하려고 했다.
어쨌든 충주시 홍보담당자가 됐으니 이제부터는 전국에 충주라는 도시 이름만 알리자. 충주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리는 것은 두 번째로, 일단 서울 부산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충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만을 알리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페이스북에 처음 로그인했더니 첫 화면이 충주시 중앙탑 사진이었다. 보기만 해도 끄응 소리가 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났지만 욕설을 하자면 한국에는 탑, 산, 강이 없어 충주라는 글자만 가리면 저것이 충주시 중앙탑인지 익산 미륵사지탑인지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충주와 청주는 혼동되기 때문에 충주를 알리기로 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충주시청 간판을 내걸었다.
▲충주시 페이스북 첫 화면 바뀌기 전후
대범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실은 올라와 요 며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평화로웠다. 내가 충주시 페이스북 커버를 바꾸든, 거기에 가족사진을 올리든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과감하게 해보기로 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SNS를 들여다보니 1초에 수백 건의 홍보물이 쏟아지고 있었다.(요즘 유튜브는 하루에 등록되는 영상을 모두 켜면 재생하는 데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다들 튀려고 노력하면 유명 연예인과 화려한 영상 효과, 음향을 들이대더라. 그런 경쟁이라면 예산이 많은 쪽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충주는 그럴 만한 예산도 없었고 그만큼의 예산을 활용할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려면 차별화를 해야 하는데 다들 퀄리티를 높이려 하니 그렇다면 나는 퀄리티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 포스터 대회에 출품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눈에 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홍보는 옥수수였다. 일단 눈에 띄기 위해서는 익숙한 장면을 살짝 변주하는 패러디가 좋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국문과 졸업생의 발상), 대중에게 잘 알려진 광고 댓글, 유행어, 드립 등을 적절히 바꿔 썼다. 멘트는 준비됐는데 이미지가 문제였다. 유명한 방송 장면이나 이미지를 그대로 쓰면 저작권에 걸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직접 그리기로 했다.
▲파워포인트로 사람을 그리다
파워포인트로 그렸어 군대에서 훈련계획 같은 걸 그릴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 지도에 기본 도형으로 도식을 그려 손에 익었다. 군대나 시청, 공공기관의 PC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편리한 선택이었다. 그림은 잘 그리면 원작을 베낀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못하면 원작을 꿰뚫어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그리는 것이 중요해졌고 기본 도형을 겹쳐 모양을 만들었다. 마치 화장실, 횡단보도 표시와 같은 어느 정도 형상을 하면 그 상징을 떠올리는 픽토그램 같은 원리였다.
포스터는 결재없이 게재되었다. SNS가 워낙 속도가 중요해 하루 만에 유행이 지나고 따라가기 때문에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겠다고 했다. 바로 앞서 선보인 B급 홍보실험작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자 위에서도 흔쾌히 승낙했다.
■B급?의 성과는 S급. 그렇게 홍보포스터를 2년간 그렸다. 처음에는 공식 홍보물인가, 공무원 스스로 한 것인가라는 의견부터 예산으로 까불다, 며칠 안 한다 등 의문과 부정이 많았다. 그러나 충주시의 B급 홍보가 3년여 동안 여전한 모습을 보이자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도 어느새 인정과 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담당자들이 참신하다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담당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관리자와 조직이 훌륭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모두 나에게는 벅차고 기쁜 내용들이었다.
충주시의 B급 홍보를 많은 사람들이 B급 홍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표준규격인 A급을 벗어나는 전략 때문이지 저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아마도 아닐 것이다…?). 사실 충주시의 B급 홍보 성과는 S급이라고 부를 만하다. 처음 세운 목표처럼 온 국민이 충주를 알게 됐을지 모르지만 충주는 확실히 예전보다 유명해졌다. 특히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것이 성과가 크다.
담당자를 3년간 맡아 문체부에서 40여 개의 전직 중앙부처 강연, 페이스북코리아에서는 전국 지자체 강연 등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충주시의 B급 홍보 사례를 강연했다. 조선 중아 동아일보에서 KBS MBC SBS 등 연락이 오면 어디든 달려가 최선을 다해 충주시를 알렸고 그 결과 대형 검색포털 메인에도 충주시가 소개됐다. 오프라인 노력과 온라인 노력이 겹치면서 충주시의 SNS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18년쯤이었나? 충주시를 소셜특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지금 들으면 조금 부끄럽지만 돌이켜보면 충주시의 B급 홍보를 통해 충주시를 알리겠다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다.
■충주시 B급 홍보 흥행은 지역 균형 발전의 한 예.
나는 충주시 B급 홍보의 성공 사례가 균형발전을 이루었을 가능성 중 하나라고 본다. 충주라는 중부 내륙에 위치한 중소도시가 SNS라는 도구를 활용해 물리적 제약을 넘어 전국을 자유롭게 활보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A급으로 불리는 규격이나 모범답안에서 벗어나 선보였던 파격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시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능성을 실험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무엇보다 A급이란 표준규격을 벗어난 ‘일탈’, 그 의외성과 오락성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아닐까?
충주시 B급 홍보는 홍보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돼 SNS라는 도구를 통해 활약한 사례지만 실제 로컬 장면에는 홍보 외에도 여러 분야가 산재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콘텐츠를 알리는 방법 또한 SNS 외에도 다양하다.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자연경관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고 하드웨어일 수도 있고 그 무대는 온라인일 수도 있고 오프라인일 수도 있어.
여기서 보듯 균형발전이란 A급으로 불리는 표준규격에서 정해진 하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균형발전이란 전국의 모든 지역이 인구가 같아지고 인프라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류 비주류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균형발전은 각 지역이 자신다워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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