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2019.07.05 10:00
남진 – 이력서 [국악풍의 곡으로 가창][SBS] 명란특급 이력서 남진라이브
[SBS] 명랑특급 이력서 남진라이브
남진 – 이력서
어디서든 부를 수 있다는 모습이 타고난 가수였다. 우연히 필자는 올드팝 ‘오 캐롤’부터 히트곡 ‘빈 잔’까지 남진의 미니 콘서트를 한낮에 집 근처 한식당에서 관람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취중 공연은 아니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남진은 맥주 한 잔을 따라 한두 모금 훌쩍거렸을 뿐이다. 본인은 마시지 않아도 선뜻 술잔을 부딪치는 매너는 전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반세기 넘게 스타로 살아온 남진은 몸에 밴 배려와 존중으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철언으로 모두를 납득시켰다.술을 좋아하지 않는 남진이지만 술에 취해 토크에 직접 나선 이유는 후배들 때문이다. 데뷔 55주년 기념 앨범에 이자영, 설운도, 진성, 장윤정, 김종서, 박미경, 서문탁, 박승화, 강인봉, 김승기, 김광진, 육중완 밴드, 알리 등 노래를 잘하는 후배들이 총출동해 남진의 히트곡을 재해석한다. 7월부터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발매되며 앞으로 노래를 묶어 LP 1000장, CD 3000장으로 제작된다. 앨범 커버는 이성근 화백이 그리고 수익금은 전액 전남 고흥군에 짓는 남진가요기념관에 기부된다. 남진은 “후배들이 이쪽으로 나와줘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며 잔을 부딪쳤다.[취중 토크] 남진의 ‘오빠’ 소리에 힘을 주고 그 전율에 공연하겠습니다.
[취중 토크] 남진의 ‘오빠’ 소리에 힘을 주고 그 전율에 공연합시다.- ‘미스트롯’ 섭외를 거절했대요.처음 섭외 왔을 때 망설였어요. 젊었을 때 제안이 오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즐겁게 하고 오면 좋겠지만 나이가 들면 어울리는 곳을 골라서 나가야 해요. ‘미스트롯’을 처음 봤을 때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거절했어요. 젊은 애들은 노래를 잘하는데 굳이 안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작하는 사람이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는 동생이라 그 친구의 부탁을 받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조건을 걸었습니다.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 절대 심사평가를 시키지 말 것. 딱 2개였어요.”
-심사평가는 왜 제외했나요.직업은 가수지 심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심사는 전문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 평가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가수 생활을 오래 한다고 심사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미스트롯’에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의욕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무대를 준비했을 텐데 제 한마디에 좌우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지켜볼 수도 없어요. 참가자들이 노래를 날카롭게 잘해서 감탄만 해왔어요. 신인 때 쇼 프로그램에 나온 것 같기도 했어요.”
-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합니다.1960년대 쇼쇼쇼라는 프로그램인데 미스트롯과 비슷했어요. 노래뿐만 아니라 웃음과 감동도 들어가야 진정한 쇼입니다. 저희 때도 쇼를 통해서 스타가 탄생하곤 했어요. 늦었지만 그때 직원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요. 당신들이 나를 그렇게 키워줬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신인이 혼자 크지는 않거든요. 모두가 융합해서 하나의 예술을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요즘 음악방송에서는 노래만 부르고 들어가잖아요, 그런 건 쇼가 아닌 것 같아요. ‘미스트롯’ 녹화가 끝나고 침체된 가요계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 -직접 후배 발굴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요? -그러면 대충은 안 돼요. 지금 하는 일을 다 그만두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어요. 지나가다가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옆에서 응원해주는 게 좋아요. 후배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 트로트 가수의 성공 조건이 있다면.노래마다 색깔이 있어요. 그 포인트를 잡아야 해요. 트로트라고 하는데 그 안에 댄스, 발라드, 랩, EDM 다양해요. 트로트는 4분의 4박자 리듬이며, 이에 더해진 장르에 따라 창법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노래를 들으면 가수의 삶이 묻어나와야 합니다. 관객들에게도 그런 울림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노래할 때마다 인생이 3분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노래합니다. 마음에 닿지 않으면 그건 노래가 아니에요.”
- 송가인의 노래는 어떻습니까.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한국의 전통가요인 판소리, 국악입니다. 아주 신비로운 소리예요 울림이 있어요. 송가인한테도 약간 그런 느낌이 있어요. 송가인만의 트로트 감성이 있다는 거죠. 다른 가수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전해주기 때문에 국민들이 송가인의 노래에 감동하고 빠져들곤 하는 거죠. 가수는 색깔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의 엘비스 프레스리라는 수식어는 록 발성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사실 정통 트로트를 못해서 팝을 섞어서 나왔어요. 중3 때 ‘오!’ ‘캐롤’에서 처음 음악을 접하고 계속 팝만 들었어요.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을 놓고 전축 앞으로 달려가 하루종일 LP를 듣고 따라 불렀습니다. 아는 한국 노래로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아버지 환갑잔치로 불렀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유일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노래가 하나 나오면 온 국민이 몇 년 동안 듣고 불렀거든요. 가요라는 게 그 노래 하나를 불러본 사람이 트로트를 하려고 하면 얼마나 어려울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롤모델을 찾았어요.”
-당시 롤모델은 누구였습니까.데뷔하기 1년 전인 1964년 맨발의 청춘이 나왔어요. >고 최희준 선생님이 부르신 노래인데 이 사람이 완전 팝의 영향을 받아서 불렀거든요. 선생님 노래를 따라하면서 연습했어요. 1965년도에 1집 ‘서울 플레이보이’를 가지고 방송국에 갔더니 제 목소리를 최희준 선생님으로 오해하는 PD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계속 팝스타일로 밀고 나갔고 저는 여기에 트로트 리듬을 섞어서 이른바 ‘뽕짝’으로 대박을 쳤어요.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전에 없던 스타일로 불러서 인기를 얻은 거예요. 트로트는 굽힘과 깎기를 잘해야 하는데 저는 잘 못해서 고현인 선생님을 보면서 배웠어요.”
지난해 최희섭의 사망에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제 눈앞 세대가 하나둘 가면 형 이제 제 차례도 오네요라고 인사했어요. 나의 낭만이자 큰 응원군이었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본받을 점이 많은 양반을 만나서 운이 좋았어요.[취중 토크] 남진의 오빠 소리에 힘을 주고 그 전율에 공연합니다.
[취중 토크] 남진의 ‘오빠’ 소리에 힘을 주고 그 전율에 공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