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망 원인인 절친 김정민 윤종신 프로필 본명 나이 신체 학력이족 MBN 동치미 가수 김민우와이프와 사별 재혼 가능성을 언급하는 자동차 딜러.

본명 김정수(돈 정수)[1]출생 19 68년 10월 14일[2](53세)서울 특별시 마포구 성산동[3]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신체 181cm, 72kg, 형의 소속사 실버 스톤 엔터테인먼트 본관 김해 김 씨[4]배우자 타니 루미코(1979년 8월 14일 출생)(2006년 10월 21일에 결혼~현재)[5]아이[6]장남 킴테양(2007년생)차남 킴도융(2008년생)남 킴담율(2013년생), 학력 동도 공업 고등 학교(졸업)경원 전문 대학(건축 솔비그와/전문 학사)디지털 서울 문화 예술대(실용 음악학/졸업)데뷔 1994년 1집’그대 사랑 속에 머무르고’종교, 천주교(세례명:조셉)병역 대한민국 국군기 국군의 국방 홍보원 홍보 지원대 병장 만기 퇴역[7]에쯔크네ー무챠은스멩[8]

  1. 개요[편집]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2. 아마추어에서 처음으로 상업 가수로 성공한 경우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원래 데뷔 전까지 가수의 꿈을 가지고 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물론 음악 활동은 했지만…학생 시절부터 기타를 좋아해서 대학 시절 록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던 연주가로 밴드에서도 보컬 쪽에 특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수가 된 것은 오히려 음악보다는 그냥 잘생긴 외모로 뽑힌 것으로 일종의 길거리 캐스팅. 본인이 군대 가기 전까지 함께 활동하고 친한 밴드의 후배 김민우가 본인이 군대에 간 뒤 상업으로 가수로 데뷔하며 인기를 얻어 1992년 군대를 제대한 직후에 친구가 “그 김민우가 나의 친한 대학 후배 겸 밴드 동생이었다”라고 자랑하면서 친구가 “네가 산 김민우의 앨범에 김민우의 친필 사인을 받고 한다”다며 연락이 되어 그 친구와 함께 김민우를 사적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3. 그래서 당시 유명 가수와 음악 관계자들이 많이 다니던 강남 신사동에 있는 유명 카페인 HQ카페란 곳에서 김 민을 친구[9]까지 셋이서 만났는데 하필이면 그 때 유명 음악 감독의 오진우 감독이 그 카페에 방문했다가 김 민을 보고인사하고 있었지만, 함께 있던 김정민을 보고외모에 반하여 캐스팅했다.
  4. 김정민의 말이 오진우 감독이 그대로”에 민우야 안녕, 그 친구는 누구냐”며고 다가오면서 김민우가 “아 네, 친한 오빠 오빠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오진우가 바로 앞까지 와서, 김정민의 얼굴을 보면 눈을 전혀 떼지 못하고 약간 어눌하면서 바로”군의 가수하고 줄래?”,”저와 함께 한다”과 중간, 대화 과정도 없이 함부로 캐스팅했다고 한다. 김정민은 처음에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보면”어…너…아…너…”라고 말을 더듬으며 바라보는 깜짝 놀라면서도 속으로 ‘이 아저씨 왜 그럴까. 어디선가 만난 사람이었나? 싸움을 팔아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캐스팅을 요구하자 더 놀랐다고. 그 후 계약이 되어 보컬 연습에 몰두하고 데뷔한 것으로 알려졌다.[10]
  5. 김정수라는 본명 대신 김정민라는 예명도 오진우가 만들어 주고, 현재 김정민의 스타일의 짧은 단발 머리와 껍질, 데님 위주의 패션에서 데뷔 전, 오진우가 정한 설정이라고 한다. 물론 본전도 록을 할 때 가죽 옷을 좋아하고 입고 다닌 데님은 공연할 때 본인이 좋아하고 입을 정도까지는 아니고 머리도 달랐다고 한다. 원래는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록을 하면서 머리를 기르는 장발이 좋아했고 또 입대 전에 군대에 갈 때가 된 밴드 친구들도 “군대 가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는데 록 정신을 잃을까봐”” 어떻게 할 것인가”와 토론까지 했겠는가.[11]그러나 오·지누와 만날 때는 제대 직후라 머리가 짧고 그 모습에 오·지누가 반했다고 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정민이는 나랑 닮았다며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6. 데뷔 이후 2년간 아픔을 겪다 결국 오진우 감독 회사와 헤어지게 됐고, 그 이유는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밝혀졌다. 경제적인 문제였지만 상세한 수익 분배 문제까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김정민의 음반이 실패한 것도 아니고 얼굴도 어느 정도 유명해졌기 때문에 유명세를 탔지만 경제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워낙 집안이 가난한 편이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막노동을 했는데 그가 데뷔해 2년이나 활동한 뒤에도 부모가 계속 그런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7. 그래서 피곤하던 그가 도중에 화를 내며 오진우에게 선배님, 저 오히려 막노동을 하겠습니다라고까지 했단다. 그 정도이니 아마도 80년대90년대까지 한국 대중가요계의 문제였던 불합리한 수익 배분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말뿐만 아니라 음반 준비 도중 김종민이 연락을 끊고 정말 며칠 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호소가 있은 뒤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다른 음반사로부터 김종민에게 러브콜이 왔고 그중 한 회사가 놀라운 수준의 경제적 보장을 약속하는 계약을 담보로 자기 회사로 옮기라고 설득했고 김종민이 세 차례나 거절했으나 결국 그 회사가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시도했으나 결국 거액의 계약금을 현금으로 보여주도록 설득했고 김종민이 세 차례나 거절했고 그 계약을 거절해 오진이와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8. 오진우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고, 마음의 상처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만큼 심하게 고생했다지만, 아무리 캐스팅과 데뷔를 총괄 감독한 은인이라 해도 대중에게 유명해진 소속사 가수들이 경제 사정이 다른 가수들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식적으로 당대의 분배 구조가 불합리했음을 자신도 잘 알면서도 특별한 혜택을 준 것에 대해 남자인 척척 알면서도 남자에게만 심한 의리라고 믿었다. 부모가 막노동을 계속했다는 것을 김종민의 회사도 알았더라면… 어쨌든 두 사람은 방송을 통해서라도 다시 만나 당사자끼리 화해했으니 다행이다.

본명 김상진 출신 1969년 5월 18일 (52세), 서울특별시 신체 173cm | 63kg | AB형 [1] 가족동반 1녀 김민종(2009년생) [2] 학력 대원외국어학교 (스페인어과 / 1990 / 졸업) [3] 경원전문대학 (전자계산학과) [2] [2] 학력 대원외국어과 / 경원신학교 / 新學校] [자동차데뷔 新學校] [1990] [3] [3] 新學校] [전자계산학과] 新學校] 新學校] 新學校] 新學校] 新學校] [전자계산

  1. 소개[편집]대한민국 원가 손으로 자동차 딜러. 2. 가수 활동[편집]1990년 1st앨범”사랑일 뿐이야”로 데뷔했다. 대원 외국어 고등 학교에서 친구의 윤·정신과 만나면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눈 뜨게 되는, 경원 단기 대학 입학 후 대학 선배인 가수 김·정민이랑 함께 1980년대 후반 아마추어 헤비 메탈 그룹”보헤미안”를 결성, 대학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가 압구정의 카페에서 서빙 및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 단골 고객인 성우·장의 프로듀서가 주위에서 김·너의 노래 실력을 소문으로 들은 자신의 생일에 이·뭉세, 김·존에 김·한 손 등 인기 가수들이 포진한 파티 자리에서 김·민우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그 자리에서 백두산에서 유명한 유·형의[5]와 음반 기획자 김·광수[6]에서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다.
  2. 참고로 이들은 1980년대 후반 당시 여성 솔로의 양대 산맥으로 뛴 이·지연이라고 김·원 선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사람들이었지만 당시 김…민우는 김·원 선의 열렬한 팬이어서 김·광수를 선택하면서 본격적인 데뷔 작업에 들어간다.
  3. 1988년부터 2년간 앨범을 준비하면서 박·주영, 윤· 선 하·그아은훙 등 유명 작사 작곡가들과 노력한 끝에 1990년 5월에 가요계 데뷔를 완수했다. 앨범 준비 당시 얼마나 철저했는지 노래로 숨을 쉬는 부분, 발성 법의 순서까지 완벽하게 기억할수록, 라이브 무대에서도 안정된 기량을 발휘하게 될 데뷔 3개월 만에 부쩍 늘어난 인기 앨범 곡”사랑일 뿐이다”와 “입대 열차 안에서 “에서 신인으로서는 유례없는 가요 톱 10에서 2번이나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4. 그 뒤 후속 곡”입영 열차 안에서 “으로 활동하던 1990년 7월 입대 영장을 발부 받아 방위병으로 입대했고, 데뷔 활동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로 가수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입영 열차 안에서 “라는 노래를 내보내기 때문에 기획사가 강제 입영시켰다고 한다. 그녀가 입영 후에도 가요 톱 10골든 컵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어머니 등 그녀의 가족이 대리 수상했다.

1992년 2월 1일에 퇴역 후 활동을 재개했으나, [7] 곧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가요계 판도가 뒤집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1994년 최남욱(한가람) 등 음악을 하던 동료들과 밴드 Shake를 결성했지만 여의치 않았다.1996년 개인 재산과 대출금을 들여 성내동에 지은 녹음실이 정신병자였던 동네 이발사의 방화로 불이 나 전소됐지만 건물이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집을 압류당하는 등 생계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1997년 4집을 끝으로 내놓지 못했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카페 등에서 노래하는 밤무대가 뚝뚝 끊겨 2000년도를 맞았다. 이 시기에는 돈 한 푼이 아까울 때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기 위해 강동구 집에서 예식장이 있는 강남까지 버스값도 없이 걷거나 자신의 신세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극단적인 시도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 활동이 계속 줄어들면서 대중과 점점 멀어져 가는 추억의 가수 정도로 각인돼 가는 걸 보면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의 정의에 가장 어울리는 가수가 아닌가 싶다. 다만 연예인의 길을 잠시 포기하고 수입차 세일즈맨으로 변신해 인생을 역전하게 된 다음 단락 이야기는 다른 슈가맨과는 차별화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3. 2004년 수입차 세일즈맨으로 활약[편집].2004년 동네 후배의 소개로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서울지역 공식 딜러인 로얄오토모빌의 김태성 대표를 만나 자동차 영업 분야에 눈을 뜨게 됐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입차 세일즈맨으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상술된 사고로 재산을 크게 잃고 수년간 고생했던 경험이 그를 다른 세계로 보낸 것이다. 1년간 연수생으로 무급에 혹독한 자동차 세일즈 교육을 거치며 연예인의 색깔을 빼갔고, 수입차 세일즈맨의 모습을 갖춰나가다 그가 정식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멘토였던 김 대표가 갑자기 중국으로 이직하면서 스스로 로열 오토모빌에서 계속 근무해야 할 명분이 없어져 2005년 말 메르세데스벤츠 대한민국 딜러 중 하나인 한성자동차에 스카우트됐다.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쌓아올린 연예계의 인맥이 영업 실적에 큰 도움이 됐을 것[9]이기 때문에 짐작이 가기 쉽지만 실제 김…민우는 인기 연예인으로서 방송 활동한 기간이 불과 3개월 정도로 초단기여서 연예계의 인맥이 그리 많지 않고 신입 시절 불쑥의 이직으로 초반의 고객 형성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김…민우가 말하고서는 자신을 경험한 고객의 80%이상은 그를 추억의 가수로 기억하는 일반인이라고 한다.

사실, 벤츠 같은 최고급 브랜드 수입 차 고객은 그야말로 상류층이 대부분으로, 자신들의 경제 사정을 공개하기에 상당히 꺼리는 것으로 단순히 연예인이라는 명성만 볼 게 아니라 계약을 성사시킬 때까지 그야말로 몇번의 방황과 엄격한 비교의 끝에 딜러를 택한다는 것. 그래서 김·너도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세일즈 맨으로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의 노래가 듣고 싶은 고객을 위해서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거나 다른 딜러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요청에 빠짐없이 신속 출동하는 등 보이지 않는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장기적 안목과 정성을 바탕으로 고객 관리를 실시하는 정성이 모여서 2006년에 매달 평균 9-10대의 벤츠를 판매하는 사내에 전무 후무한 영업 실적 기록을 세우며 2007년에 빚도 다 갚게 됐다. 그 뒤 신용 등급도 상위 수준으로 회복하고 통장 잔액도 풍부해진다 등 경제적 상황이 회복하고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벤츠의 강남 지점장으로서 독립했으며 16년에는 10년 근속상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나는 판매 왕이 아니라 판매 왕들과 지내딜러에 지나지 않으면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그가 세운 기록(1개월에 2대 가량 팔면 좋아진다고 말하지만 나이 6~8대를 팔았다는 이야기-바람결에 들은)이 10년이 지난 현재도 깨지지 않는 것을 보면 세일즈 맨으로서의 능력이 높은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4. 가수 활동 재개 자신의 정년을 오십세 정도로 봐서 세일즈 맨에서 은퇴 후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수입 차 세일즈 맨 활동이 안정기에 접어든 2010년대 중반부터 가수 활동을 조금씩 재개했다

2014년 11월의 콘서트 7080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5년 11월에는 투 유 프로젝트-설탕만에서는 희열 팀 슈가 사원으로 추억의 가수로 등장한다. 슈가 송은 사랑일 뿐.

2016년 7월 24일 복면가 왕이 비프 오아치킨의 비행기는 기내식을 올리라는 가명으로 나오고 방콕의 친구 선풍기처럼 이·뭉세, 고·최은희의 “이혼 이야기”를 부르며 2라운드 준비 곡은 변·징소프의 “로라”이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패널 안에서 정체를 파악한 김현철은 그의 등장에 울게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0]

2017년 가을부터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수 활동에 더 중점을 두고 20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기타 2009년에 6살 연하의 회사원과 결혼했지만 8년에서 아내를 여읜 최초는 17년 여름, 급성의 대상 포진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급성의 대상 포진이 아닌 희귀 난치성 질환의 일종인 혈구 탐식성 림프 조직구증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나타났다. #[11]외동딸이 있지만 아내가 죽은 딸의 양육을 김·민우의 어머니가 거들어 준다고 한다.

2020년 1월 17일 방송된 ‘공부맘’에서 딸, 엄마(딸에겐 할머니)와 보내는 일상을 공개했는데, 딸은 5학년이 된 나이에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울방학을 맞아 규칙적으로 생활계획표도 세우고 허리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공부와 독서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학교생활 통지표에 보면 전과목을 매우 잘 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고, 미술대회에서도 수상하고 [13][14]미술에서도 재능이 우수한 편이다. 아버지 김민우는 물론 보는 이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연예계의 가장 친한 친구로는 가수 김정민과 윤종신이 있다.김종민과는 경원전문대에서 선후배로 만났고 대학 밴드 보헤미안에서 함께 활동하는 등 음악적 인연이 깊다. 실제 김종민이 김민우보다 대학이나 나이에도 선배였지만 가요계에서는 김민우보다 4년 늦은 1994년 데뷔했다. 1990년 군 복무를 하던 김정민이 TV에서 단번에 인기 스타가 된 김민우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가수 데뷔의 꿈을 키웠고 제대 후 김민우의 도움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김종민이 인기가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1998년 KBS에서 기획한 자신의 스페셜 음악 프로그램에 사정이 어려웠던 김민우를 게스트로 초대해 노래할 수 있는 무대[15]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최근까지도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휴먼 다큐멘터리인이 좋다 등 김민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석해 김민우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윤종신은 김민우의 대원외고 동기동창이자 고등학교 3학년 반 친구로 학교에서 밴드부를 결성하고 김민우에게 가입을 권유해 그가 음악에 눈을 뜨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윤종신이 1990년 데뷔와 함께 인기스타였던 시절의 김민우를 회상하며 이놈(김민우)은 너무 인기라 말을 걸지 못했다고.그런데 김민우가 밝힌 이유로는 1990년 당시 좋은 소속사를 좀 알아봐 달라는 윤종신의 요청에 015B가 소속된 대형 기획사 태영AV를 소개한 덕분에 윤종신이 015B 객원보컬로 데뷔할 수 있었다는 것. 슈가맨에서 이 이야기가 공개됐을 때 출연자와 방청객 모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나오자 김민우는 윤종신이 데뷔 초에는 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조금이나마 침울한 것 같다며 조금 디스를 하는 것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월간 윤종신 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한편 불타는 청춘에 또 다른 대원고 동창 김태우(01 오비 객원보컬)도 훗날 출연했는데 우연히 그는 김민우의 불태운 나무를 자신의 솔로 2집으로 리메이크했다.

김민우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또 현재 재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

지난 12일 방송된 동치미에 출연한 가수 김민우는 “조금 늦게 결혼했다. 아내가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날 방송에서 김민우는 “아내와 헤어진 지 4년이 됐다. 그 친구와 9, 10년 정도 같이 지냈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 날 목이 아프다고 해서 코끼리처럼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고 아내의 투병 당시를 회상했다.

김민우는 “검사를 했는데 염증 수치가 보통의 수십 배였다. 물이 찼다고 해서 물을 빼고 대학병원에 갔다. 제가 부산 강의를 다녀왔는데 의사 3명이 올라왔다. ‘우리 생각엔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보인다. 너무 빨리 전이돼서 기억도 조금씩 사라지곤 한다. 지금 좀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딸 민정이가 1, 2학년 때였다. 그런 시기에 아내는 일주일 뒤 혈액암에 걸렸다. 마음에 묻은 지 4년쯤 됐다. 첫 1년은 매일 포도주 1병씩 마셔야 잠이 온다며 부인의 사망 사실을 설명했다.

김민우는 또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우리 집에 놀러와.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어. 코로나 19문제도 있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민정이와 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음악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금년 54세의 가수 김민우는 노래 「사랑에 지나지 않아」등을 발표해, 사랑받아 왔다. 그는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자동차 딜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김민우는 과거 아내와 결혼한 뒤 딸 하나를 낳았다. 그는 아내와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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