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220405~220406

이 책 한 권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대수롭지 않은 천문학자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별거 아니라는 표현이 갖는 중의적인 의미와 첫 달 착륙자인 닐 암스트롱의 오마주가 인상적인 책의 마지막 문장.

천문학자 하면 보통 큰 망원경으로 하늘의 천체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제목부터 별을 보지 않겠다는 천문학자의 책과는. 그 제목만큼 책의 내용도 예상과 달랐다. ‘과학책이라기보다는 문학책에 가깝다고 느낀다’고 적혀 있던 추천사를 뒤늦게 본 덕분에 책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대단한 계기가 있어서 혹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와서 천문학자가 된 게 아니라 그냥 ‘삶을 따라 흐르면서 살다 보니까 지금 이러고 있다.’라고 말한 저자지만 그 표현을 말 그대로 믿기엔 책을 읽는 내내 천문학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진다. 학생 때는 지구과학경연대회에 나가 ‘약간(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을 받거나 대학원 연구실에 책상이 있는 학부생 시절을 보내며 대학교양강의 첫날을 위한 문제를 고심하며 만들었고, 퇴근시간을 넘겨 연구를 하면서도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모습은 그저 흘러가는 삶을 살아왔다.그러기에는 너무 천문학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무심코 100%라는 표현을 쓰고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과학자다운 모습과 코스모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느낀 불안과 어머니이기 때문에 갖게 된 감정과 유대감까지. 천문학자로서의 저자와 혼자로서의 저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천문학 관련 전문지식을 어떻게든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책이 아니다. 그저 저자의 삶에 천문학이 스며 있는 것이고, 그 삶의 단면을 읽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쉬는 날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창밖에서 오리온자리를 발견했을 때. 이후 한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찾았고, 별자리 앱을 설치하고 귀가길에 지금 하늘 어느 방향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 찾았고, 겨울 별자리라는 오리온자리가 왜 여름 새벽에 보이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은 창밖 너머로 많이 올라온 건물과 그곳에서 나오는 빛으로 별자리를 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었다.

PS1. 개인적으로 영어로 쓴 논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어려움을 기술하는 파트가 공감됐다. 발전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탄생하는 과학기술 용어를 논외로 하더라도 단어나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완벽하게 번역하기는 정말 어렵다. 영어로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지만 이를 어떤 한국어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던 시간을 떠올리면 “아, 나의 빈약한 한국어 실력이여.”라고 외치는 저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PS2. 책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보현산 천문대. https://www.kasi.re.kr/boao/index

알아보니 가능한 날짜에 예약을 하면 일반인(비전문가)에게도 천문관측을 허용하는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방문해서 천체구경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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