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트하우스 시즌2가 시작되고 지난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그 드라마를 본방사수 했다. 팬트하우스 시즌1 최종회에서 주단태와 전소진은 그들의 죄를 묻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막장 드라마는 욕한다고 하지만 그 작가가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때 윤 총장은 복귀했고 추미애는 물러났다.
남편은 한번 보니 구역질이 나서 보이지 않더니 그걸 보느냐고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솔직히 나는 뉴스가 보고 싶지 않아. 분노를 유발하는 뉴스와 댓글이 거슬린다. 그런데도 왜 팬트하우스 이야기에 끌리는 걸까.처음에는 나도 욕을 했어.어떻게 한 아파트에 저렇게 사악한 사람들이 다 살 수 있지? 그러나 우리는 그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현실을 살고 있다.그 드라마에서는 팬트하우스에서 세 명이 죽었지만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전소진이 그 무수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제 자식이 저지른 살인 앞에서 벌벌 떨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자신이 잘 살지 못해서 아이가 저렇게 된 것 같다며 술을 마시고 공포에 떠는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을까.명백한 혜택인데도 자기 자식 혜택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항변하며 조국 딸의 표창장 하나에 온 가족의 인격과 인권을 짓밟는 나경원과 정서진은 무엇이 다른가.팬트하우스 아이들의 비행은 어떨까.최근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연예인과 체육계 아이돌의 학폭 논란을 보면 어른의 눈을 피해 어른을 닮은 성인 축소판이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릴 때 학폭 경험이 있는 아들은 가해자는 자신 있게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학폭을 저지른 아이는 절대 제대로 된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학폭은 구경꾼이 있어 이뤄졌다. 팬트하우스 사람들의 악행도 부와 권력이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고상하고 유려하게 포장하는 사람들이 왜 군부독재의 악행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을까. 왜 부당하게 사람들이 탄압받아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는가. 왜 민주화된 사회의 권리는 누리면서 의무는 행사하지 않는 것일까.
유튜브에서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인간성을 나무라며 아름다운 아이돌 가수들의 학창 시절을 여기저기서 이야기하면 폭발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똑똑하고 능력 있고 힘센 아이들이었다. 예전 뒷골목의 불량배들은 아니었다. 뒷골목 불량배들은 하나둘씩 기가 꺾여 돈을 빼앗았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은 정치력까지 발휘한다. 어머니도 선생님도 이용할 수 있다.모난 자가 징징거린다 바람 부는 대로 힘센 자에게 붙잡히고, 강요받는 자가 있더라도 눈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라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은 아닌지 가슴 아팠다. 지금 90년생 아이들을 키울 때 좋은 것을 보여 주고, 맛있는 것도 먹여 주고, 돈을 달라고 하면서 조기 유학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부터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웃의 불행을 눈감아 주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게 너의 불행에 대한 보험이야.공감의 시대를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고상한 척해선 안 된다. 무관심과 침묵으로 나쁜 행동은 자신감을 불러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