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의 추억 2006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20대에는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고, 그 소중한 시간에 아르바이트해서 끝나기도 싫었다.그래서 새벽에 파트 수업을 하고 오전에 학교에 가서 오후에 선배들과 같이 일도 배우고 놀기도 하고 주말에는 선배들 팀에서 보조역을 맡으면 돌아다니기 바빴다.그때는 술은 정신력이라며 평생 마실 술도 23년 안에 다 마신 것 같다.여름방학이 되면 나의 든든한 방어막이나 내가 무엇을 하든 믿어주는 엄마 덕분에!! 여행을 다니며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고 그렇게 살았다.
“너는 정말 열심히 산다”는 게 나에게는 칭찬이자 에너지였다.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닐 때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던 중 문득 “네 목을 보면 금방 네 본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잔뜩 목도 짧은데!!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느날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거울을 왜 봐야 하는지 잘 모르는 한 사람이라서;) 또 목젖이 나온 뒤 엄마 나 목젖이 나왔어?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샤워를 하고 무심코 거울을 봤는데 또 목젖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음…… “엄마, 나 목젖이 더 나온 것 같지 않아?” “어색하면 병원에 가봐” 어느날 엄마 지인이 다쳐서 함께 종합병원에 병문안 겸 방문하는데 그때는 간호사분 중 한 분이 진료에 대해 상담해주는 코너가 있었다.아마 나처럼 어떤 증상으로 어느 과를 방문해야 할지 몰라 상담을 받는 사람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그날 목이 아프지는 않지만 튀어나와 있어서 이비인후과에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질문을 했는데 그 분이 ‘아직 암이 아니어서’를 수차례 반복해 제 친구들이 닦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제 엄마를 발끈할 뻔했다.왜 애들한테 암이라고 하냐구?그래서 그런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말하지 않고 병원을 예약했다.어려서부터 병원은 친근하고 한의원 냄새를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 치과의자에 앉아 자는 독특한 아이였기 때문일까.무섭다는 등의 감정은 정말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냥 어느 과로 가야 할지 하나하나 낯선 내분비내과에 예약해줘서 처음으로 내분비내과를 방문했는데 목 얘기를 하고 제 목을 보자마자 “조직검사해 봅시다”고 말했다.그렇게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검사실로 갔더니 목 곳곳을 만지고 살짝 눌러보니 주사 바늘을 목에 세 번 정도 찔러 피를 뽑듯 뭔가를 뽑아냈다.그렇게 목에 당시 일진이 형들이 차고 있었던 것처럼 거즈와 밴드를 붙이고 병원에서 나왔다.그리고 집에 전화해서 난리가 났다.조직검사라는 단어가 그렇게 난리가 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이후 어머니에게도 이상 증상이 하나 있어 조직검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섬유질 덩어리로 드러나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그때 알았다. 가족의 건강은 집에서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나 슬프고 힘든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어쨌든 그렇게 나는 검사 결과를 듣는 날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가야 했고, 나의 어머니는 드라마 속 아줌마들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그날 의사는 그랬다.차트를 넘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좋고 이것도 좋고 조직검사를 볼까요? 암이군요. “드라마 속에서 보던 심각한 표정이라든지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개뿔, 제 기억 속 의사는 냉소적이었고 아주 당연한 결과라는 말투였다” 네, 저도 예상한 대로 답했다. 진심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았다.그도 그럴 리가 처음 들어본 ‘갑상선암’이라는 걸.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보험도 제대로 못 받았다. 한 보험사에선 여성 질환이 아닌 암에 속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느낌? 그래서 전화로 찬만 내고 끊었던 기억이 난다.어쨌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의사가 그 다음 얘기를 하는 걸. 당연하지.뭔가 얘기해줘야겠다.수술이 필요하다, 약으로 낫는다, 희망이 없다 등.그런데 제가 가만히 있자니 의사의 다음 말이 ‘여기서 울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아, 네’ 또 기다렸다.그러더니 다시 그 말을 되풀이했다.3번 정도 했나?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래서 뱉은 말이 “나 죽어요?” “그때 처음 당황해 보이는 의사가 ‘아니 그게 아니라’ 근데 왜 울라고 해요, 슬프지 않아요. 저 뭐 해야 돼요?’뒷말을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슬프지 않아요’까지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15년이 지난 일인데도 그저 이 상황이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성인이 되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결국 그렇게 이비인후과로 전과돼 수술을 하고, 이후 핵의학과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수술 후 먹던 약을 일정 기간 줄이고 일정 기간 끊고 식사 조절이 들어간다. 그리고 방사선약을 먹고 일정 기간 가족과도 분리해 식사와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신디로이드를 복용하는) 여러 차례의 방사선 치료(알약으로 먹는다)를 받은 뒤 주기적으로 CT와 채혈을 하면서 추적검사를 하면서 신디로이드를 복용한다.갑상선과 부갑상선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신디로이드를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게 귀찮고 문제지만 특별히 그 이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약을 잘 먹지 않는 날이 많았는데 영양제를 뺀 기분이랄까.그리하여 나는 신지로이드와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8주차 병원 방문, 9주차 채혈 및 신딜로이드 섭취량 조절 서론이 너무 길었다.왠지 저정도의 설명을 해야될것같은 기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전부터 1년에 한 번 채혈을 통해 갑상선 호르몬의 양이 적절한지 체크만 하고 살았다.결혼 후 혹시나 해서 임신하면 약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임신하면 병원에 오라고 했다.5주차에 알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게 사실이고 시간도 맞추기 힘들었다.내가 다니는 과가 독특한지, 왜 나는 그 과인지 모르겠지만 담당 샘은 주 1회, 그것도 오전에만 진료를 받는다.그날을 맞추지 않으면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게 함정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8주째가 안 되는 줄 알고 병원에 갔다.채혈을 하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 다음 주 9주차에 결과를 보러 갔지만 호르몬량이 조금 부족해 0.025mg을 추가 복용하기로 했다.기존에 복용하던 양이 0.1mg이었다.

0.025mg은 이보다 작은 연보라색 알약인데.. 왜 신딜로이드는 약인데 예쁘지.. 아무튼 그렇게 한달 먹어보자고 했다.그렇게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에 한 번씩 채혈을 통해 호르몬이 부족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약을 조절하고 있다.일 때문에 병원에 가려면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그 후 별다른 이상 없이 큰 무리 없이 여전히 0.125mg을 복용하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임신 후 처음 검사 결과를 보고 복용량을 바꾼 날 조금 뒷말을 흐리며 담당 샘은 말했다.임신 초기에 호르몬량이 부족하다면 좋지 않아요~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텐데~
글쎄요. 저의 무지 때문이랄까요?~ 중간에 약을 안먹고 넘는다는건 알았는지 아니면 저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건지 0.1mg 복용한지 몇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약을 좀 줄이자고 해서 줄였는데 왠지 모르게 줄였더니 ‘혹시나’ 싶어서 열심히 빼지 않고 먹었는데 다시 0.1mg으로 돌아왔는데… 0.1mg 정도면 심쿵이가 내 안에 있어도 호르몬만 잘 먹으면 부족하지 않을테니 이유없는 자신감이 정말…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말못할걸 떠올렸다.임신 사실을 알았으면 바로 병원에서 오세요라고 강하게 말하지 그랬어요(그래서 선생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리지 않았나) 생각보다 너무 소심한 나는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반항아가 된 기분으로 생각한 일을 했다.
아무튼!! 아기가 생기면 내 몸이 내 몸답지 않게 되는건 이렇게 모르게 배워간다. 안되는 자신감과 무지를 혼동하지 말자.그리고 엉뚱한 호기심은 혼자 살 때 하자!
임신하면… 신지로이드 끊을까 말까 고민하던 무지를 떠올리면서~ 임신준비하는 신지로이드 복용자분은 임신사실을 알게되는대로 바로 병원에 가서 체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