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나중에 사준다는 나에게 아이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언제부터 휴대전화가 있었어?” “20살!” 옛날에는 그랬다. 내가 또래보다 늦게 휴대폰을 갖기 시작했는데 어쨌든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화면을 보면 터치부터 보는 요즘 터치스크린 세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렇게 빨리 변하는 사회 속에서 나도 길을 잃을까 두려워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 되고, 그래서 이런 책도 읽게 된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

이미 꽤 유명했던 책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니까. 그러던 중 뉴스에서 조금은 접한, 혹은 막연히 의문을 가진, 혹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주제를 이렇게 다양하게 다뤄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기쁘다. 이 책은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책이 아니다.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는 누구도 모범답안을 알릴 수 없는, 사실상 답이 없는 복잡한 딜레마의 산'(p24)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해 가능성을 살펴보고 가정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를 지적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은 대개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가 연결되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자동차 소유에서 자유롭게 한다거나 해킹 위험이 있다거나 하는 것 외에도 ‘그동안 스스로 운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차량을 이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 사회구조와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p39)는 식으로 새롭게 생각하도록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책을 가끔 읽게 되는 것은 내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생각을 위한 것이 더 크다. 아니 로봇이 모든 걸 하면 사람은 뭐하고 살아? 같은 의문이 들기도 하니까. 나의 짧은 식견은 로봇 개발자가 될 수밖에 없네!로 끝나지만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변동성의 방향과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면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직업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직업 세계에서 사라진 직업을 설명하기는 쉽지만 미래에 각광받을 직업을 제대로 예측하기는 어렵다(p145)고 여지를 두면서도 점쟁이처럼 미래 유망 직업을 예측하지 못하더라도 미래 직업이 놓일 기본 틀은 파악이 가능하다(p146)는 설명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짚어간다.
로봇이 할 수 있다, 자동화하기 쉽다, 알고리즘으로 해결 가능한 것은 대체되기 쉬울 것이다. 그에 비해 사회복지상담, 재활치료, 초등교사, 의사 등은 대체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로봇이나 알고리즘 등의 도움은 받겠지만 완벽하게 대체되진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로봇으로 대체 불가능한 직업에 대해 기준을 세운 것도 있었다. 로봇으로 대체 불가능한 창조적 예술직업, 자동화할 필요가 없는 운동선수 같은 직업, 기계화 사회에 꼭 필요한 로봇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 같은 직업, 로봇이 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의료/돌봄 관련 서비스 직종이 그렇단다. 물론 정말 그럴지는 미래가 돼봐야 알겠지만.
갑자기 일상으로 들어온 온라인 교육도 주요 이슈. 코로나19 때문에 갑작스럽게 마주한 온라인 중심의 교육 앞에서 향후 교육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다. 큰 건물과 함께 있는 학교라는 곳은 대면교육을 하는 교사/교수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어떤 역할을 주요하게 생각하고 집중해야 하는가. 뭐, 그런.사실 온라인 수업을 위한 기술은 다 있었는데 그걸 대다수 사람들이 접하고 활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연구자들이 말하는 대로 기술개발은 가장 쉬운 과제이고 진짜 과제는 사용자 수용성과 윤리적 문제'(p55)라고 하는데 혹시 인간은 그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남다른 생각이 든다. 기술은 계속 발전해 나가지만 인간이 그 기술을 선택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고 접근 가능한 사람이 많지 않다면 결국 대형 테크 기업이 원하는 대로 될까 두렵기도 하다.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고 읽다 보면 오히려 기술이 무엇인지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보다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워지는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기술과 함께 어떻게 살지 같은 고민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저자가 “외뇌시대에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외국어를 익히느냐는 물음은 필연적으로 학습의 본질과 삶의 목표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기능까지 외부에 의존하는가. 내가 직접 배우고 익혀야 할 기능은 무엇인가.(p87) 이런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 것처럼 말이다. 답을 당장 찾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들어해야 할 주제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p21 인공지능과 로봇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는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인간에게 편리함과 새로운 능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됐던 첨단기술이 그 변화의 세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빼앗고 기존의 감정적 소통과 관계까지 황폐화시키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된다.
p45명의 판단은 고유한 상황에서 활용돼 그 패턴을 정형화시킬 필요가 없는 유연성을 갖지만 컴퓨터에는 이런 유연성이 없다.
p50 향후 자율주행차, 인간형 로봇이 직면할 가장 어려운 문제는 윤리적 딜레마다. 정확히 말하면 무인 차량과 로봇의 문제라기보다 사람이 로봇의 판단 메커니즘과 결과를 어떻게 설계하느냐 하는 문제다.
p52명의 운전자라면 면책을 받을 수 있는 사고 상황에서 어려운 선택을 자율주행차는 피할 수 없다.
p74 대개 사람들은 의도를 갖고 말한다. 그 발화 의도가 문장에 명랑하게 나타난다면 기계번역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말로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 간 대화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p80 로봇이 직면한 ‘쉬운 문제는 어렵고 어려운 문제는 쉬운’ 현상이다. 미국의 로봇 과학자 한스 모라벡이 주장한 이 현상은 ‘모라벡의 역설’로 불린다. 컴퓨터가 고도의 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계산량은 적지만 운동이나 감각능력에는 막대한 계산능력과 제어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라벡은 이런 역설적 현상을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설명한다. 걷고 말하는 등의 기능은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 끝에 최적화된 기능이지만 논리 능력과 같은 인지기능은 상대적으로 나중에 학습 간 기능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능을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종의 역설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오랜 시간을 거쳐 본능화된 걷기, 말하는 기능만큼 역설계가 어렵다는 게 모라벡의 주장이다.
p82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일상적 환경에서 누가 고급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고 이를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인터넷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작성돼 있고 학계 등 글로벌 지식사회의 공용어도 영어다. 필요할 경우 기계번역이나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원문을 찾아 읽고 이를 활용하는 것과는 효율성 차원에서 비교가 안 된다. 앞으로 대부분의 업무가 글로벌 동향과 연계되는 것을 고려하면 관련 정보와 판단을 외부나 2차 자료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1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과거보다 외국어를 중요하게 활용하는 상황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외국어 학습법에서 과거처럼 단어와 숙어를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대신 조화롭게 기계의 도움을 받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p100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이 온라인으로 무료 제공되는 것, 즉 제로 수준의 한계비용으로 제공됨으로써 전통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과거의 교육시스템은 붕괴 또는 근본 저그 변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육은 여전히 고유의 장점을 갖고 있어 그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결코 작지 않다.
p101 등록금 부담이 없거나 낮아 출석과 과제 등의 의무가 적은 데다 학생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수강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동시에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의 치명적 단점이 됐다. 낮은 참여율과 몰입도, 높은 중도 포기율, 학습 의무감 저하, 시험 성적 저조 등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무크가 내세우는 ‘최상의 교육을 모두에게 무료로’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연구도 공개됐다.
p102 무크는 자발적인 학습 동기가 강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95%에 달하는 대다수 학생들에게 적절한 교육 수단이 아니다. 대부분의 무크 프로그램이 세계 최고 대학의 강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학습 동기나 자율성 측면에서 보통 수준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는 강의 효율성이 낮다.
p104 대학은 특정 목표를 추구하는 호기심이 강한 또래집단을 강의실과 실험실, 커뮤니티를 통해 만나게 하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으로 제도라는 특성을 갖는다. 온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반대로 오프라인 대면 만남과 몰입이라는 희귀해진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도 주목된다.
p114 기술력의 차이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진짜 권력과 부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누가 보다 정보세계의 속성과 구조를 정확히 파악했느냐가 기술의 방향과 수준을 판단하는 결정적 요소다.
p119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변화하는 지식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학습을 계속하지 않으면 곧 낡은 지식과 권위에 의존하는 구세주가 된다. 어느 분야에서든 구세대에 밀려나야 하기 위해서는 계속 배워야 할 평생학습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p123 우리는 대학의 위기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이 대학교육에 의존해온 현실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식의 반감기가 갈수록 단축되는 시대에 개인이 인생의 특정 시기에 집중 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얻는 대학 시스템은 앞으로 기존의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위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p195 여가는 고대 그리스어로 스코레다. 한가 또는 자유시간, 조용함과 평화를 의미한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라기보다 의무와 구속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여가란 남는 시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이다.
p202, 203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현대인의 시간기근 현상 1. 과거에 비해 할 일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업무상황) 2. 과거보다 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