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모치는 녹내장 수술 1년만에 실명했다.녹내장으로 인한 실명은 아니었다.녹내장 수술로 인한 잦은 염증 발생으로 스테로이드 안약을 지속적으로 투약해 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간에 영향을 미쳐 간의 수치를 높였다.눈보다 중요한 게 생명과 직결되는 신체건강이어서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자르게 됐고 염증 관리가 제대로 안 돼 포도막염이 발생했다.심각한 포도막염으로 망막 박리가 진행 중이고 망막 박리는 초기 상태였으나 이미 시야각이 매우 좁아져 거의 실명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었다.의사소통은 “여기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치료한다고 해도 악화만 막을 뿐 시력 개선의 여지는 없다. 이미 모치는 희미한 상태에서 적응을 해오고 있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적응을 어느 정도 한 상태이며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이나 수술의 마취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치료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현재의 최선은 시력을 포기하고 간 회복을 돕는 것이라는 소견이 있었다.
나도 녹내장으로 인한 몇 차례의 수술, 응급처치를 받고 왔기 때문에 모치에게 또 한번의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돈이나 시간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모찌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
수술 과정에서 여러 차례 그 쓰라린 고통을 참아온 못치에게 다시는 그 고통을 안길 수 없었다.꾸준히 떡을 관리해준 병원 의사들의 의견도 더 이상의 수술은 이 아이에게 가혹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고 가족들도 동의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과감하게 이뤄졌다.아니, 어쩌면 결정도 없었을지도 모른다.간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그렇게 떡은 시력을 잃었다. 12년을 채우고 13년째 된 우리 아이 떡.12년 동안 보석 같은 눈으로 경험한 세상을 더는 볼 수 없어 칠흑 같은 세상에 갇혀 버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정말 다행인 것은 실명하기 전날 기적처럼 나는 친정행각을 했고 마지막으로 모찌에 희미하게나마 나와 팔짱을 낄 수 있었다.떡의 실명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며칠씩 적응을 도우며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슬펐지만 나마저 무너지면 모찌는 더 힘들고 더 불안해질 것 같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노년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모찌도 용감하게 받아들여 나아가기를 기원했다.
첫 녹내장 발병 당시 나는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내 탓이라면, 내가 케어를 못해서, 내가 모찌를 외롭게 했기 때문에 모찌는 녹내장에 온 것이라고 자책했다. 너무 힘들었고, 너무 괴로웠다.모찌 대신 내 눈이 아프면 내 수명을 단축해서라도 이 아이의 눈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바랐지만 수술 실패로 시력은 결국 소실됐다.실패한 눈이 오그라들고 사람들은 징그럽다고 할 정도로 외적으로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그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보고 있자니 죄책감으로 가슴이 졸려왔다.내 탓인 것처럼 느껴지고 무능한 어머니라 눈을 살리지 못했다는 아픔에 눈을 맞추기조차 어려웠다.밤새도록 울고 잠 못 드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남은 눈이 녹내장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든 이 눈만은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뭐든 했다.막대한 자금을 투자했고, 막대한 시간과 간호에 투자했다.눈은 살렸지만 스테로이드에 취약한 떡의 간에 이상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날 떡은 이상했다.어쩔 수 없이 자리를 움직이지 않았다.산책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으나 길을 잃고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실명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찌는 기력이 없고 우울했다시종 누워서 잠만 잘 뿐 움직이지 않았다.무서운지 물도 밥도 먹으러 못 가고 소변조차 24시간 넘게 참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
눈은 금방이라도 피가 날 것처럼 시뻘겋게 충혈됐다.눈동자의 혼탁이 너무 심했다.
심리적으로 매우 우울했어.그래도 다행인 건 실명했을 때도 모찌는 밥을 잘 챙겨 먹었고 가끔 공을 가져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스테로이드 안약이 다시 들어가자 혼탁이 약간 나아지고 약간 피가 퍼지기 시작했으나 소용없었다.
둘째 날까지도 모찌는 낯선 곳에 가면 벌벌 떨지 마라, 실명한 채 산책 나가면 움직이지 못하고 무서운지 벌벌 떨기만 했다.이젠 산책도 못하는지 너무 속상했지만 역시 떡은 건강하게 사흘째가 되면서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다.낯익은 할머니 댁으로 모시고 가면 마치 눈이 보이게 장소를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탐색하다 발을 뗐다.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꼬리까지 흔들며 할머니 댁을 좋아했다.
피부를 긁고 있는 눈과 간장의 문제가 심각하여, 피부까지는 아직 치료를 할 수 없는 기에 방치 중ㅠㅠ
눈의 탁함이 실명을 말해 준다.아직까지는 상당히 강한 빛정도로 아주 조금의 반응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머지않아 그것도 끝나버린다는…
이번에는 나도 울지 않았다.흐뭇한 목소리로 떡을 불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당신은 내 딸이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고 말했다.눈이 보이지 않아도 너의 눈이 되어줄 가족이 있기에 더 사랑해 주고 더 안아줬어.
우리 딸 둘^^
모치는 3일 정도 우울하고 겁을 먹다가 4일쯤 되면 낯선 집, 밖에서도 신경을 쓰지만 더 이상 떨지 않고 후각에 의존해 탐색을 시작했다.물론 계속 모찌는 여기다라고 소리로 위치를 알려주고 만지기 전에 소리를 내고 놀라지 않도록 예고를 하고 만지면서 방향을 잡아줬다.
그런 시도 끝에 내려놓아도 더 이상 겁먹지 않고 밖에서 짧게 산책도 하고 소변도 보고 낯선 시댁으로 데려갔는데 낯선 사람에게도 다가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애착을 잘 형성한 덕분에 사람에 대한 기억이 좋고 세상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박았던 것도 이제는 후각 의존도를 매우 높여 후각을 이용해 물체가 앞에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몰입 횟수가 현저히 줄었고 씩씩하게도 금방 적응해 주었다.
눈은 잃었지만 여전히 탐스럽고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렇게 매달리던 떡의 안색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후회는 없다. 떡에 단 1년이라도 세상을 볼 수 있게 연장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동안 눈치 보느라 고생했어 모찌야 이제 그 고통에서 헤어나진 못하지만 편안한 노년을 보내길 바래언제나 너를 응원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