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축농증이 나았어!
몇 달 전의 일이다. 전북 순창에 40여 년 전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마련한 수만 평의 땅 한 구석에 새로 지은 집에서 오랜 친구들이 1박 2일의 친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이 친구들은 정말 특별한 분들이지만 47년 전 우리가 모두 젊었을 때 가끔은 대학생이었을 때 광주 SDA영어학원에서 영어공부를 위해 만나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만나 신앙의 가족으로 반세기를 살아온 분들이다. 광주와 서울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필자가 통역관과 원목으로 모시던 4년 동안 함께 성경을 공부하면서 250여 명의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목사로서, 교사로서, 의사로서, 사업가로, 사모로서, 그리고 많은 분야에서 일하다가 대부분 은퇴하여 노년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모인 20여명의 친구들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 신앙을 하게 된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며 얼마나 감회가 깊고 감동적이고 행복했는지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날 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는데 그중 한 은퇴 목사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우리 아버지는 공부 말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아이들을 엄격하게 지도했다. 아침에는 항상 새벽 4시에 깨워서 여름에도 겨울에도 문을 열었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한 뒤 책상에 앉을 때까지 매일 이런 훈련이 이어졌다. 이러한 생활이 나중에 나의 목회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공부에 열중해서 예수님께 푹 빠졌어.
1973년 지방에 있는 국립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고시방에 들어가 기술고시를 준비했다. 매일 2~3시간 잘까 생각하면서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나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급성 신우신염이 생겨 혈뇨를 토하며 힘든 생활을 했다. 병원에서는 걸어서는 안 된다며 병원에 올 때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그러던 중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 자매(박후후)를 만났는데 <성경은 말한다.>와 <오늘의 신앙>을 권하며 공부하게 됐다. 성경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어 처음에는 무관심했지만 매일 와서 공부했는지 확인하느라 귀찮아 공부하게 됐고 성의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당시 의대를 하고 있는 동생(곡수)에게도 성경 공부를 권했다.
그런데 CCC(한국대학생선교회)와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그리고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이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부르며 경계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성경 공부는 계속했다. 다니엘서와 요한의 묵시록 연구는 당시 광주영어학원교회 원목인 김평안 전도사의 지도로 공부했다.
1973년 12월 29일 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학원 교회에 갔으나 박 자매는 나타나지 않고 최 자매가 반겨주어 교회로 안내하였다. 당시 이 교회는 영어학원에서 수강생을 위해 운영되는 교회였다. 학원 교회에는 주로 청년들이 모였지만 여학생들이 많았고 남학생들은 매우 적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을 공부하던 중 엘렌 G 화이트의 저서를 소개하고 읽어보라고 했다. 화이트 여사가 선자라고 해서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1974년 1월부터 여러 저서 중 하나인 시대의 소원을 탐독하게 되면서 고시 공부처럼 밤잠을 줄여 읽기 시작했다. 매장마다 소개되는 관련 성경 구절을 서너 차례 먼저 읽고 예수님의 생애를 조명한 이 책을 밤새워 읽었다. 그동안 나는 예수님을 새로 만났다. 그리고 성경이 새로운 책이 되었다. 아, 이 책은 나를 성경에, 또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구절구절 내 마음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었다. 침례교 요한의 기록에서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는 말을 읽으며 마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밤이 되면 천사가 나타나 나를 비추는 것 같고, 나 자신이 완전히 깨져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끌려가는 느낌, 아니 뭔가 어떤 강력한 힘에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성경을 펴고 시대의 소원을 열어 읽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 책갈피를 적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시작했고 밤새 방을 구르며 울고 또 울었다. 내 주위가 밝아지면서 성령의 임재를 깊이 느끼기도 했다.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고시 공부 중 생긴 신우의 신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를 괴롭히던 축농증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공부에 전념하던 나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아버지가 알고 교회가 밥을 먹여주느냐고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졌고 이제는 성경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새로 만난 이 기쁨과 결심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침례사에 참여했다. 1974년 2월 23일 무등산 저수지에서 얼음을 깨고 침례를 받게 되었다. 내 진로에도 변화가 생겼어. 지금은 고시공부는 관심이 없어지고 대신 그로부터 6개월 뒤 서울에 있는 S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해 공부를 하는데, 당시 신학과 학생들이 신앙이나 언어 연구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갈등이 생겨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이한 방법으로 나를 믿음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군대 생활을 통해 광야신학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 친구의 특별한 도움을 받아 성경 공부를 도와주신 김 전도사가 신학과 교수로 가시게 되어 군 복무를 마친 후 한 달간 김 교수 집에 머물며 복학 준비를 했다. 그리고 대학 측의 배려로 하계동에 개척교회를 맡으면서 학생 전도사로 일하게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
어느덧 4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그저 꿈만 같다. 내가 만약 하나님을 몰랐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청년 시절에도 술과 담배에 지쳐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그런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손톱이 담뱃진에게 노랗고 막걸리 주전자를 입에 올리자 한 방울 남지 않을 때까지 술을 좋아하던 나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안고 평생을 목사로 일했고 은퇴해 재림의 소원을 기다리며 살게 됐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들도 모두 신앙생활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만입이 있더라도 그것을 입고 우리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은 생애는 인생의 매 순간마다 분에 넘치는 축복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고 싶다.
저: 김평안, DrPH(보건학박사, 여수요양병원 천연치료연구소장)